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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이의 대화법

​지하

   그날은 켄타에게 운수대통의 날이었어야 했다, 원래는. 일어나서 우연히 본 별자리 운세는 1위였으며, 시청률이 잘 나왔다고 보너스로 급여를 더 지급받기도 했고, NG없이 녹화가 스무스하게 끝나 일찍 퇴근하게 되기도 했고, 뭐 겸사겸사 지만 지나가는 길에 사쿠라이도 오랜만에 만나서는 딱히 티격태격하는 것도 없이 저녁 약속도 잡았다. 마지막 껀... 겉으로 좋다고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아무튼 간에. 그래서 방송국 주차장에 웬 이상한 악세사리 가판이 서있어도 딱히 의심도 하지 않고 기분도 좋은데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켄타는 평소에 악세사리를 하고 다니는 편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면 조금은 귀찮아 하는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밴드를 했던 몸이라 그런 은빛 가득한 가판대에 자동으로 눈이 가기 마련이었다. 오늘 보너스도 받았으니까 뭐 하나쯤은, 하는 마음으로 가판대 앞에서 서성였다. 반지나 목걸이들을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주머니에 손을 꼽고는 입을 쭉 빼고 둘러보고 있었는데 가판대 뒤에 후드를 푹 뒤집어 쓴 사람이 말을 걸었다.

 

 "악세사리 좋아하시나요?"

 "어-... 뭐 딱히요. 한 번 보는거에요."

 "혹시 맘에 드시는 게 있으면 착용해보셔도 되니까 편하게 보세요."

 

   껴봐도 된다고? 하는 마음에 아까부터 유독 눈에 띄었던 특이한 무늬의 은색 반지를 손에 들었다. 바람같기도 하고 물결같기도 한 무늬에 가운데에 콕하니 빨간색 큐빅이 박혀있는 반지였다.

 

 "그 반지는 특별해요. 당신이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있던 걸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반지랍니다."

 "헤에~..."

 

 

   어느 손가락에 맞으려나 하고 하나하나 살짝씩 반지를 걸쳐보며 후드 쓴 사람의 말에 대충 대꾸했다. '아, 여기 딱 맞겠네' 하고 반지가 들어간 손가락은 하필이면 왼손 네번째 손가락이었다. 반지가 맘에 들기는 하는데 역시 아무리 그래도 이 손가락은 좀...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빼려고 하니,

 

 "어? 뭐야."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특별한 반지라고."

 "아니, 특별한 건 둘째 치고, 안 빠지잖아!"

 

   이것 좀 어떻게 해보라는 식으로 빠지지 않는 반지를 빼는 시늉을 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후드의 사람은 수상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기쳐서 반지를 팔아먹는거냐? 야! 안 빠진다고!"

 "사기라뇨~. 그 반지의 힘때문에 안 빠지는 것뿐이지 저는 아무 짓도 안했다구요. 보아하니 지금 당신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나보죠?"

 "하? 뭔 개풀뜯어먹는 소리야. 이런 식으로 안 빠져도 나는 돈 못 내. 빼낼 방법 없어?"

 "그 반지는 '말하지 못하고 있던 걸 말하도록 도와주는 반지', 즉, 말하지 못했던 말을 그 사람에게 하시면 아마 반지도 빠질거에요."

 "아니 그런 거 없다니까..."

 "참고로 못 빼시면 계속해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테니까 조심하시고... 아, 반지 값은 1000엔입니다."

 "역시 사기잖아. 이거!"

 "...켄타씨? 거기서 뭐해요? 약속장소에 안오시길래 와봤더니..."

 

   사기꾼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뒤쪽에서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 사쿠라이. 잠깐만 기다려. 이 사기꾼 새끼가...."

 "네? 누가 있어요?"

 "어?"

 

   사쿠라이의 등장으로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에 마치 홀린 것처럼 가판대는 커녕 쓰레기 하나 굴러다니지 않는 주차장에 혼자 주먹쥐고 서있는 꼬라지였다. 그러나 방금 그 대화가 꿈은 아니라는 듯 왼손에는 아까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아까까진 여기에 악세사리 가판대가 있었다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이런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가판대가 있을 턱이 없는데 아까는 왜 의심을 안했지? 후드를 푹 눌러 쓰고 있어서 얼굴도 못봤고. 설마하며 꺼내본 지갑에는 원래 있어야 할 돈에서 딱 1000엔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 아무것도 아냐. 오늘 뭐 먹기로 했더라?"

 "돈카츠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찾아놨어요. 갑시다."

 "그래그래..."

 

   이 나이먹고 그런 허술한 사기에 걸리다니 차마 말하기도 그렇고,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잊자. 라고,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갑자기 휴무라고?"

 "음... 그렇게 써있네요..."

 

   원래 가려던 돈카츠집은 왜 인지 이유는 따로 적혀 있지는 않지만 당일 휴무라는 종이만 문 앞에 붙어있었다. 그럼 그냥 다른 아무데나 들어갈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유명한 사쿠라이 쇼. 원래 가던 집이 아닌 이상 소란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 주변에 뭐 평소에 가던 다른 집은 없어? 아무 메뉴나 상관없으니까."

 "어... 그럼.... 파스타....는 어떠세요?"

 "엑."

 

   파스타. 남자 둘이, 파스타.... 물론 다른 사람끼리 그러고 있었으면 별로 신경도 안쓸거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는 거지 뭘. 하고 넘겼을 메뉴지만 나랑? 사쿠라이가? 둘이서? 하고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는 메뉴였다. 별로 먹는 것에는 가리는 거 없는 켄타도 파스타는 좀 느끼해서 잘 안먹기도 했고, 왠지 편견이지만 사쿠라이가 가는 데는 볼로네즈니 알프레도니 이상하고 어색한 이름들이 줄줄이 써있는 가게일 것 같았다. 켄타가 평소에 먹는 파스타라고는 그냥 집에서 대충 해먹는 인스턴트 스파게티나 아저씨들 가득한 가게의 나폴리탄 정도인데.

 

 "다른 메뉴는... 없어...?"

 "다른 데는... 이 주변에는 잘 안와서..."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거길로 가자."

 

   사쿠라이가 가는 데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신경이나 쓰겠어.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메뉴를 변경했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파스타집은 예상한 대로 메뉴판은 이상한 이름들이 나열되어있고 고급스럽게 꾸민 테이블에는 한송이 꽃이 올려져 있는 간질간질한 느낌의 가게였다. 그 속에서 켄타 혼자 살짝은 낡은 가죽점퍼에 새까맣게 탄 얼굴로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뭐 드실래요?"

 "아... 난 이런 데 잘 모르니까, 대충 골라줘..."

 "그럼 느끼한 건 싫다고 하셨으니까 이거랑..."

 "어어..."

 

   사쿠라이가 주문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계속해서 물을 넘겼다. 빨리 먹고 그냥 집에 가서 자자. 오늘은 별로 일진이 안 좋은 거 같아. 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입에 물을 가져다 댔을 때, 켄타는 실수로 컵을 놓쳐 쏟아버렸다.

 

 "우악,"

 "엇, 괜찮아요? 여기 휴지요"

 "어, 고마워..."

 "...? 손에 그건 뭐에요?"

 

   물은 별로 많이 들어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닦아내는 것 자체는 큰일이 아니었지만 휴지를 건내받은 손에 있던 반지를 사쿠라이가 보게 되었다. 아까까진 그래도 가벼운 분위기였는데,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사쿠라이는 켄타의 왼손을 살짝 잡아올려 자신의 눈앞에 끌고 왔다.

 

 "....왼손 약지..."

 "아니, 그,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고."

 "....누구한테 받은 거에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

 "...."

 "잠깐... 아파..."

 

   잡힌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켄타가 사쿠라이를 째려봤지만 사쿠라이는 힘을 뺄 생각은 커녕 켄타 앞에서는 잘 보여주지 않던 진지한 얼굴로 켄타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켄타는 사쿠라이가 어디까지 믿어줄까 싶었지만 사실대로 말하기는 해야겠으니 아랫입술을 불평스럽게 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내가 산거야. 그것도 아까 주차장에서."

 "..."

 "아까 네가 오기전에 주차장에 악세사릴 파는 가판대가 있어서... 아 오늘 보너스 받았단 얘기는 했던가? 암튼 그래서 사려고 이리저리 보는데 이 반지가 무슨 특별한? 저주? 어쩌구한 반지여서"

 "..."

 "뭐 수상한 설명이긴 했는데 슬쩍 껴봤는데 안빠지잖아. 그래서 너 왔을때 그 사기꾼 놈을 한 대 치려고 멱살을 잡았는데 네가 와서는"

 "....근데 왜 하필 여기에 꼈어요?"

 "여기밖에 안들어가는데 어떡하라고!!"

 

   켄타가 하도 횡설수설 말하니 사쿠라이도 짓고 있던 진지한 표정이 살짝 풀렸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지 대꾸했다.

 

 "계속 끼고 있을 건 아니잖아요."

 "내말이, 그새끼 말로는 말하고 싶어도 말 못했던 게 있을거라는 데 그런게 나한테 있을리가..."

 "말하고 싶어도... 말 못했던 거요?"

 "그, 그래. 그걸...."

 "주문하신 파스타 나왔습니다. 머쉬룸 크림 파스타는 어느 쪽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 이쪽에 준비해주세요."

 

   종업원이 와서도 사쿠라이는 켄타의 왼손을 놔주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켄타의 말이 어느 정도는 믿겨져도, 빠지지 않는다는 건 별로 믿어지지 않는지 자꾸 반지를 이리저리 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끝내는 그리 길지는 않은 손톱으로 반지와 손가락 사이를 강하게 긁어내자 켄타도 아픔이 느껴졌는지 아프다고 사쿠라이를 한 번 더 째려봤으나 손을 내치지는 않았다.

 

 "진짜 안빠진다고..."

 "흠...."

 

   종업원이 가고 나서야 손을 풀어주고 둘 다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안빠지는건 안빠지는거고 역시 맘에는 들지 않았는지 사쿠라이가 반지 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신경도 못쓰고 눈치밥을 먹었다.

 

   다 먹고 나와 사쿠라이의 차에 탔다. 으레 이렇게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집으로 데려다 주곤 했으니 거기까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평소였다면 사쿠라이는 켄타가 좋아하는 그 눈으로 켄타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을, 오늘 사쿠라이의 시선은 켄타의 왼손으로만 가있었다. 켄타는 왼손을 애써 오른손으로 가리며 말을 꺼냈다.

 

 "...그렇게 신경쓰여?"

 "...켄타씨가 악세사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좀 드물잖아요."

 "아니, 그건..."

 "안빠진다는 거 알아요. 제가 반지 빼는 법 찾아볼테니까..."

 "...네, 가 신경쓸 일은 아니잖아."

 "네?"

 "네가 내 엄마도 아니고... 반지 정도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

 

   켄타는 사쿠라이가 더 이상 이놈의 반지때문에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었으나, 사쿠라이의 표정은 켄타의 생각처럼 밝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저는, 적어도 켄타씨가 왼손 약지에 무언가 끼고 있으면 그걸 질투할 정도의 사이는 됐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애초에 내가 사서 꼈다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빠보이는거야!?"

 "유치하게 굴어서 죄송하지만... 제가 사드린 목걸이는 하고 다니지도 않잖아요."

 "진짜 유치하네."

 "애초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핑계랍시고 대는 것도 유치하거든요?"

 "핑계 아니라고!!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목걸이 주는 쪽이 이상한거지."

 "뭐라고요?"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켄타의 소리침과 동시에 빨간불에 걸려 차가 멈추는 바람에 켄타는 잠깐 균형을 잃었다. 왜 이런걸로 싸우고 있는거지? 싸울 일도 아니잖아. 켄타로써는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구석도 없었고 사쿠라이한테 이렇게 쏘아붙임 당하는 상황 자체가 억울했다. 하지만 그런 억울함 때문인지 켄타는 자기도 모르게 사쿠라이에게 벽을 치고 있었다. 

 

 "...다 왔어요."

 "..."

 "안내려요?"

 "...내일 다시 얘기해."

 "...알았어요. 내일 봐요."

 

 

-

 

 

   사쿠라이와 그렇게 헤어지고는 다녀왔다는 말도 안하고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리니 방 밖으로 인사는 해야되지 않겠냐는 잔소리가 멀리서 들렸다가 사라졌다. 사쿠라이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는데,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닐까 하며 후회가 몰려왔다. 내일 얘기가 잘 풀릴거라는 확신이 들지않았다, 손에서 이 반지가 빠지기 전까지는.

 

 "아으~~ 진짜!!"

 

   켄타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직행해 손가락을 비누로 이리저리 문질러보고, 부엌에서 누나한테 잔소리를 들어가며 식용유도 가져와서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문지르고 당겨봤다. 그러나 반지는 좀 더 반짝거리며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짜 안빠지잖아.... 멍하니 포기하고 반지를 바라보다가 그 사기꾼같은 놈이 마지막에 한 말이 떠올랐다. '못 빼면 계속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반지를 낀 순간부터... 가려던 음식점은 의문의 이유로 휴무였고, 옷에다 조금이지만 물도 쏟았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사쿠라이의 기분도 상하게 만들고, 대판 싸우고... 이게 다 고놈의 반지때문인거 같은데. 켄타는 계속해서 오늘 주차장에서 있었던 대화에 대해서 곱씹었다. 말하지 않았던 것....

 

 "저... 누나."

 "에휴 진짜 내가... 응? 왜?"

 "실은.... 집에 푸딩 내가 먹은거야..!"

 "ㅁ,뭐? 아니 너 아니라며!!"

 "미, 미안해. 그리고 아빠. 그... 서랍에 오천엔 내가 가져갔던거야..."

 "너 너 이 자식..."

 "...켄타 갑자기 왜 그래?"

 "그 그리고 또..."

 

   왼손의 반지를 꼭 쥐며 가족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들을 이리저리 말해봤지만 반지는 여전히 빠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괜히 가족들 화만 돋군 켄타는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으나, 누나는 켄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 그냥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안하던 짓하면 죽는데, 같은 소리를 남기고.

 

   역시 이게 아닌가... 자신이 할 수 있었던 당장의 모든 시도에 실패한 켄타는 무기력하게 늘어져 왼손을 뻗어 반지를 바라보았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돌연 무언가 생각난 듯 켄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기꾼은 비밀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어떤 말을 하라고 말했지. 아까 가족들에게 양심적으로 고백한 일들은... 좀 나쁘긴 하지만 말할 생각은 안하고 있던 말들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했던 말이라니 그런게 어딨어!!"

 

   역시 사기꾼 말같은건 귀기울이는게 아니라며 그냥 그대로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

 

 

   다음날, 휴대폰에 '끝나면 옥상에서 보자.'는 메세지가 남겨져 있어 대충 씻고 옷을 걸쳐입고 챙길걸 챙겨 집을 나섰다. 왼손에는 아직도 반지가 빠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모든 게 안풀리는 날이었다. 갑자기 출연진 한 명이 안나가겠다고 떼를 써서 메이크업도 늦어졌고, 춤과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음향기기의 고장으로 녹화도 늦어졌다. 점심엔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매진이었고. 늦어진 녹화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촬영이 진행되었다. 오며 가며 사쿠라이를 만나기는 커녕 오늘 옥상에서 만나는 건 맞겠지...? 하는 생각만이 드는 하루였다.

 

   그래도 어찌저찌 다 끝내고 다행히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끝이 나 옥상에서 사쿠라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화 도중에도 계속 반지를 뺄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뭐 결국엔 사쿠라이 생각으로 끝이나 집중을 못하기도 했지만.

 

 "..켄타씨?"

 "어, 왔어."

 "...아직도 끼고 계시네요, 그 반지."

 

   사쿠라이는 켄타를 보자마자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에 지지 않고 켄타는 바로 말을 꺼냈다.

 

 "...어제 한 얘기 있잖아."

 "뭐 말이에요."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던거."

 "뭐, 진짜니까... 상관은 없어요."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말하고 싶었던건..."

 "...지금까지 제가 부담스러웠어요?"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뭐에요? 켄타씨는... 아무것도 안 말해주시잖아요!"

 

   켄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이 무엇인지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사쿠라이와 보낸 시간 속에서 그래,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그 말.

 

 "그래 아주 다 말해준다. 너... 진짜 딱 한 번만 말할테니까 잘들어."

 "네? 뭐,.. 갑자기 무슨..."

 

   사쿠라이가 켄타의 말에 멍하니 있을 때, 켄타는 재빨리 사쿠라이에 목에 팔을 걸어 안고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사쿠라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해."

 "네?"

 "조.... 좋아한다고!!"

 "어, 그,"

 "그러니까 이런 반지같은거에 질투하지 말란 말야, 망할 사쿠라이 쇼!!"

 "으악 잠깐만요. 귀에 대고 소리치지 마세요."

 "...네가 멍청해서 그런거잖아."

 

   사쿠라이는 예상치 못한 말에 자기도 온 얼굴에 열이 오른 것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분명 귀도 얼굴도 새빨개져있을 귀여운 사람의 얼굴이 보고싶어 켄타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켄타는 팔에 힘을 주고는 떨어질 생각을 안하며 더욱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그러던 도중 무언가 금속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

 

   켄타는 그 소리에 힘을 슬쩍 빼서 바닥과 자신의 왼손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왼손엔 언제 반지가 끼어있었냐는 양 자국도 남지 않은 채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부끄러운 말이 열쇠일 수가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사쿠라이는 안고있던 켄타가 떨어져 자유를 얻어서는 바로 켄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ㅁ, 뭐가"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그...으.... 잊어버려! 그냥 잊어!!"

 "어떻게 잊어요. 한 번밖에 안말해준다는데. 꼭 기억해야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사쿠라이가 기분이 좋아보여서, 켄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 미소에 사쿠라이는 쪽쪽,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댔다가 떼었다.

 

 "..하, 하지마, 여기 밖이잖아."

 "이제, 우리 '아무사이'도 아닌건 아니죠?"

 "...끈질기기는..."

 "저는 항상 켄타씨 좋아한다고 했는걸요."

 "...이거."

 "네?"

 "혼자서는 못하겠으니까, 해줘."

 

   켄타는 주머니에서 사쿠라이가 줬던 그 목걸이를 꺼내 사쿠라이에게 건냈다.

 

 "이제... 이런 거 받아줄 수는 있는 사이니까."

 "푸핫, 좋아요. 해줄게요."

 

   켄타의 목에 은색의 목걸이를 조심스레 걸어주었다. '원래는 아까워서 항상 보고만 있던건데,' 라는 말은 삼키고 켄타가 말을 꺼냈다.

 

 "다음엔, 내가 뭔가 사줄까?"

 "...아뇨. 다음엔 같이 사죠. 커플링 같은걸로."

 "...그래."

 

   이젠, 그럴 수 있는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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