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감정의 이름
툐툐로
사쿠라이와 어머니의 전화를 들은 것은 결코 고의가 아니였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다같이 쓰는 대기실에서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큰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은 사쿠라이의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란 것 또한 말하고 싶다. 전화기 너머에서 답답하다는 듯 들려오는 목소리와 사쿠라이의 격앙된 목소리로 상황을 바로 파악한 자신이 싫었다.
알아서 할게요. 결혼은 무슨. 저 아직 어려요. 생각도 없고.
한숨을 쉬며 긴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사쿠라이의 표정을 오노는 기억했다. 사주를 보았는데 이번년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신 사쿠라이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사쿠라이에게 만나는 사람이 없냐 물었고 선자리를 주선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하시곤했다. 사실상 아이돌이고,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쿠라이였기에 선 같은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리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것을 오노가 들었다는 것이였다. 오노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 대기실 문 앞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있다. 사쿠라이 쇼는 자신이 붙잡고 있기에 너무나도 과분한 남자라는 것을. 집안, 학벌, 외모, 성격 까지 전부다 자신이 일반인이였다면 감히 넘보지도 못할 남자였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현실적인 오노였다.
티를 내지는 않았다. 아니, 못냈다는 것이 맞았다. 그게 싫었다. 형, 그럼 말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하면서 자신과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할까 무서웠다. 자신은 겁쟁이였으니까.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현실적이였으니까. 그 때문에 오노는 그 전화를 듣고도 떠오르는 것은 하나였다. 우리는 서로를 결국 놓아주고, 놓아주어 서로를 잊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서로 20년을 넘게 알았고, 5년 가까이 연애했다. 서로에 대한 추억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정말 마법처럼 사쿠라이나 자신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잊는다면 모를까.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였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노상, 왜 제가 오노상 집에……. 우리 왜 이렇게 붙어서 자고 있어요?”
잊는 것은 오노 사토시 자신이길 바랬다. 이기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사쿠사토] 그 감정의 이름
w.툐툐로
사쿠라이는 벌떡 일어나 오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오노는 부시시 깨 사쿠라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에? 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내었다. 분명 어젯밤 뒤에 스케쥴이 없이 같이 VS아라시 녹화 후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같이 잠들었었다. 내일 얼굴이 부을 것을 알면서도 편의점에서 네캔에 천엔하는 맥주를 마셨고, TV를 보면서 깔깔 거리며 웃었고,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입을 맞추었다. 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가지지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웠고, 팔이 저릴 것을 알면서도 사쿠라이는 항상 오노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오노는 그런 사쿠라이를 말리다가 결국 못이기는 척 사쿠라이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똑같은 일상이였다. 똑같지만 너무나도 달콤해 어디 도망갈까 무서운, 오노가 가장 두려워하는 달콤한 그런 날이였다.
사쿠라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노와 자신을 번갈아보았다. 오노는 그런 사쿠라이에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장난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확실히 이런 것으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였다. 오노는 천천히 사쿠라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억 안나?”
“…네? 아, 어제 녹화하고…… 오노상이랑 오노상 집에서 한잔했어요?”
“……응.”
사쿠라이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만 이내 생각나지 않는다는 듯 이마에서 손을 떼곤 오노를 바라보며 애써 웃었다. 애써 웃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제가 어제 많이 취했나봐요. 오노상 침대에서 이렇게……. 죄송해요.”
“…오노상.”
오랜만에 듣는 오노상이라는 불음에 오노는 쓰게 웃었다. 사고가 잘 돌아가지는 않았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었다. 알 수 있을리 없었다. 특별한 것 없는 어제였고, 특별할 것이 없어야 할 아침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사고가 정확하게 돌아가지는 않지만 확실한것이 몇가지 있었다. 첫번째는 사쿠라이가 자신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강자신과의 관계를 잊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사쿠라이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다고 이렇게 붙어자고. 징그러웠겠다 오노상. 미안해요.”
저 징그럽다는 표정이, 진짜라는 것.
오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무언가 싸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였다. 마치 바다가 서서히 빠지는 것 처럼, 그렇게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오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사쿠라이를 바라보다가 샐쭉 웃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실수 한건 없죠?”
사쿠라이는 망설이며 오노에게 물었다. 오노는 그런 사쿠라이에 살짝 망설였다. 실수, 라면 실수일까.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는 너무 달라서. 그래서 실수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어려웠다. 이젠 네가 날 사랑한게 실수일테니. 그리고 그걸 입 밖으로 내기엔…자신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오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려 사쿠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 했다. 애써 주먹을 쥐며 그 손을 참아내고 오노는 웃으며 사쿠라이에게 똑같이 말했다.
“괜찮아.”
괜찮다는 그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더럽고도 치사한 말이였다. 괜찮다고. 이젠 어쩌면 다 괜찮다고. 잘됐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였다. 오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다행이라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과는 달리 오노의 입안은 수백개의 알약을 한입에 털어넣은 것 처럼 쓰고 또 썼다.
→
“지금 그걸 믿으라는 소리야?”
“니노 너도 직접 봤잖아.”
니노미야는 말도 안된다는 듯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덤덤하게 말하는 오노가 너무 바보같고 답답해서 더더욱 그랬다. 아이바는 리더…하며 말끝을 흐렸고 마츠모토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저런 반응이 정상이였다.
분명 아라시니시야가레 촬영이 있어 스튜디오에 다시 모인 다섯은 평소와 같았다. 어찌저찌하여 결국 오노의 집에서 같이 준비를 하고 스튜디오로 온 사쿠라이의 표정은 왜인지 내내 굳어있었다. 화장실을 쓰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오노가 차려준 카레를 먹으면서도 연신 미안하다 말했다. 그게 너무 싫었지만 오노는 아무말도 없이 그런 말 그만해도 된다며 웃어보였다. 같이 오는 두사람을 보며 먼저 대기실에 있었던 셋은 둘을 놀리기에 바빴다. 모를리가 없었고, 영원히 둘을 응원할 것이라 마음먹은 사람들이였기에 놀리는 것에도 진심이였다. 그 사쿠라이가 바보짓하는 것도 웃겼고 그로 인해 오노가 웃는 것도 좋았으니까.
오늘도 너무 사이 좋은거 아니야?
게임기를 보고 있던 니노미야가 둘을 슬쩍 보고 말을 꺼냈다. 다른 멤버들도 그런 니노미야를 시작으로 입을 열려고 했지만 셋은 바로 알아차렸다. 무언가 다르다고. 연예계에서 20년, 그리고 알고 지낸지는 20년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를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사쿠라이와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오노. 절대로 그런 분위기를 내던 둘이 아니였다. 대기실 분위기가 조금 굳었을 때, 방송 관계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사쿠라이씨 잠시 미팅있어요, 하며 관계자는 사쿠라이를 불렀다. 사쿠라이는 아, 하며 있다 보자는 말을 하곤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분위기인 것이다. 싸웠어? 라고 묻는 멤버들에게 이상한 일이지만 진짜 일어난 일이니 믿어달라며 오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노의 이야기를 듣던 멤버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다 이내 오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마츠모토의 질문에 니노미야와 아이바도 그 말이 가장 묻고 싶다는 듯 오노를 바라보았다. 오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사쿠라이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마음 속 파도는 잔잔했다.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잔잔하게만 일렁이는 마음 속이 오노는 조금 답답할 뿐이였다.
“응. 뭐…….”
“곧 돌아올꺼야. 병원에 가야하나? 근데 가서 뭐라고 해야하지?”
“정신과 상담을 받던가 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
“아시는 분 있어. 연락 드려볼께.”
아이바, 니노미야, 마츠모토 순서로 서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니노미야는 손에 잡고 있던 게임기 까지 내려놓고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형에 대한 걸 다 까먹어. 아이바가 속상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오노는 사쿠라이가 나간 문을 여전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저, 의도하지 않았지만 뱉어내야하는 말들이 오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꼭, 다시 기억이 나야하는걸까?”
오노의 한마디에 대기실의 분위기가 그대로 굳었다. 전화번호를 찾으려 휴대폰을 만지던 마츠모토도, 인상을 찌푸리고 걱정하던 아이바도, 손톱 끝을 괴롭히며 오노의 눈치를 보던 니노미야도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오노를 바라보았다. 오노는 어떠한 목소리 톤의 변화도 없이, 그저 오늘 촬영 몇시지- 와 같이 일상적인 말을 하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냥…… 그게 더 낫지 않을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쇼한텐,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오노의 말에 그 누구도 뭐라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오노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노는 항상 빛나는 사람이었다. 멤버들에게는항상 그러했다. 선배이고, 전설의 주니어이며, 모두에게 인정받는 춤꾼. 그게 오노 사토시였다. 그런데도 오노는 늘 겸손을 빙자하며 소심하고, 스스로를 위축 시켰다. 그러느라 바쁜 오노를 볼때면 타들어가는 멤버들은 생각도 해주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미련하게만 굴었다. 오노가 속삭이듯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자 아이바는 결심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오노의 어깨를 잡았다. 오노는 깜짝 놀라 아이바를 바라보았다. 아이바는 그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곤, 마치주인을 잃어 기 죽은 강아지 같은 눈매로, 오노를 바라보며 속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오쨩.”
“응?”
“오쨩이 괜찮냐구! 그게 제일 중요해! 다 잊은 쇼쨩이 나쁜거잖아. 오쨩 이렇게 외롭게 만들고.”
아이바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어린 걱정. 오노는 그 투명한 아이바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그런가, 라는 말에 아이바는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무조건이라고. 오노가 웃으며 아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까 방에서 차마 쓰다듬지 못한 사쿠라이가 생각났지만 별로 상관 없었다. 상관 없을, 것이였다.
“그래서, 그냥 일단 사쿠라이부터 좀 팰까? 혹시 몰라. 그렇게 돌아올지. 기억.”
“나쁘지 않은데?”
“폭력은 무슨 이유에서든 나빠.”
분위기가 조금 풀리는 것 같자 니노미야와 마츠모토가 장난식으로 말을 꺼내며 오노에게로 다가왔다. 오노는 그런 둘에게도 웃어보였다. 니노미야는 그런 오노를 바라보았다. 낡고 지친사람 같아 보였다.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언젠가 사쿠라이를 놓아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것이 눈에 다 보이는, 그런 사람. 숨기는 것은 많지만 숨기는데 재주는 없는 사람. 니노미야는 한숨을 쉬며 오노의 볼을 쭉 잡아 당겼다. 아파 니노, 라고 오노가 말했지만 니노는 괘씸하다는 듯 더 오노의 볼을 쭉 잡아 당기며 말했다.
“우리가 당신 편인 것 좀 잊지마.”
“…….”
“좀, 어?”
니노미야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지만 오노는 알고있었다. 저게 저 아이의 최대한의 위로라는 것을. 오노는 알겠다며 웃었다. 니노미야는, 웃지 못했던 것 같다. 오노의 웃음은 항상 그랬다. 같이 웃을 수가 없는 슬픈 미소를 오노는 곧 잘 지어보였으니.
“그래서. 리더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말을 해야 우리도 돕지. 진짜 기억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건 아닐 거 아니야.”
마츠모토의 말에 오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일수도, 그렇다고 저을 수도 없었다. 모르겠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사쿠라이 쇼의 기억 한가운데에 여전히 남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놓아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받을 상처라면 이런 방법으로 받고 치워버리면, 사쿠라이에게도 나쁜 일을 시키지 않고 혼자만 힘들어하면, 그러면 되는 일이니까. 오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일단은 모른척 다들 넘어가줘. 쇼는 자기가 이상하다고 생각도 못할텐데 갑자기 다들 달려들어서 그러면 애가 많이 놀랄 것 같아. 평소처럼 대해줘. 나 신경쓰지 말고.”
“…말은 잘하지.”
“부탁할게.”
오노의 말을 들은 멤버들이 모를리 없었다. 오노가 한발 도망쳤다는 것을. 모두를 위하는 척 하며 결국에는 일단 피하고 마는 오노의 나쁜 버릇이였다. 대외적으로는 좋은 결정이였고, 가장 이상적인 결정을 내리는 듯 하지만 저 선택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항상 오노 사토시였다. 자신은 철저히 무시한 대답. 나는, 괜찮다, 그렇게 바보 같이 말하게 되는 그런 대답. 오노는 멤버들을 향해 웃었다. 멤버들은 결국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같은, 오노 사토시. 그렇게 중얼거린 사람은 분명 니노미야 카즈나리였다.
←
사쿠라이씨 요즘 컨디션 항상 좋네?
밤연회 녹화를 마친 사쿠라이에게 담당 PD가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사쿠라이는 그런가요, 하며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확실히 그랬었다. 요즘 일에 대한 집중도라고 해야하나,무언가 몰입이 잘 되었다. 내뱉는 멘트들도 다 빵빵 터졌고, 퉁퉁 붓는 것도 심하지 않아 메이크업 담당자가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기도 했다.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고 그다지 힘들지도않았다. 그리고 그다지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일주일 저 그날 부터였다. 이상하다는 것이, 크게 무언가가 달라졌다라던가 멤버들이 이상하던가, 뭐 그런것이 아니였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오노와 끌어안고 자다 깨, 같이 스튜디오로 왔을 때. 그때 부터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니노미야는 자신과 오노를 보고 오늘도 사이가 좋네, 라고 말했다. 오늘‘도’물론 오노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였다. 자신에게는 언제나 좋고 멋진 선배이자 멤버였다. 유일하게 응석을 부리게 되는 사람. 그래 그만큼 믿는 사람. 그러니 더더욱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칼같은 사람이니 실수를 하면 혼날까, 그리고 그렇게 혼나면 다가간만큼 멀어질까 두려워서.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사무적으로 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사람이였다. 그러니 니노미야의 말이 이상한 것이였다. 단 한번도 오노와 단 둘이 같이 스튜디오에 바로 출근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니노미야는 오늘‘도’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오늘 도,도, 도.
사쿠라이는 벤에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사쿠라이를 힐끗 본 매니저는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 요즘 형 컨디션 좋다고 저도 많이 들어요.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
사쿠라이가 아무런 영혼도 없이 대답하자 매니저는 끙, 소리를 내며 일단 시동을 걸고 자동차를 부드럽게 움직였다. 사쿠라이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노래라도 틀까요? 라는 매니저의 말에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였다. 매니저는 저 형이 왜 저러나, 혼자 끙끙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까, 벌써 일주일이네요! 다른 멤버들 못만난지. 그래서 형이 그렇게 기운이 없는걸까요?”
“…벌써 그렇게 됐어?”
“네! 저번주에 아라시니시야가레 3주치 찍고 그 뒤로 촬영 없다고 아쉬워했었는데. 시간 참 빨라요.”
“내가 기운이 없어 보여?”
사쿠라이의 뜬금 없는 물음에 매니저는 어, 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었다가 살짝 사쿠라이의 눈치를 보았다. 사쿠라이라는 남자의 옆에 있은지도 벌써 5년째였다. 사쿠라이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있었다. 가장 화를 내는 부분은 누가 뭐래도 자신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못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였다. 예전에 한번, 눈밑이 벌개질 정도로 울고 온 사쿠라이가 로케를 미룰 수 밖에 없었을 때. 그때 사쿠라이를 매니저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무말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뻑뻑 피며, 매섭게 밖을 노려보던 사쿠라이. 형 왜 그랬어요오, 라고한마디 했다가 받은 그 시선을 기억해서, 매니저는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물론 촬영 때는 진짜 최고죠. 형 오늘도 진짜 웃기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고.... 근데, 그 뭐라고 해야하지…….”
“…….”
“행복해보이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사쿠라이는 매니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행복,하지 않다 라는 그말이 사쿠라이의 귀에 박혔다. 묘하게 들던 그 감정에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알게 된감정은 끝없이 크게 밀려와 자신을 덮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사쿠라이가 매니저를 바라보며 입을 천천히 열었다.
“왤까. 왜?”
“…네?”
“바뀐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바뀐게, 없는데.”
사쿠라이의 말에 매니저는 바뀐거라…,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아! 하며 사쿠라이를 보며 웃어보였다.
“생각해 보니까 요즘 리더 잘안만나네요!”
“…어?”
“꽤 자주 사석에서도 보고, 둘이 자주 같이 놀길래 저는 역시 친하구나~ 했는데 이번 일주일내내 그다지 만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하고. 제가 알기로는 리더 이번주 한가한걸로 알고있는데.”
“내가 오노상이랑?”
“네. 싸운건 아니죠?”
매니저의 말에 사쿠라이는 두눈이 떨리는 것을 스스로가 느꼈다. 사쿠라이는 다시 천천히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는 어두운 요코하마의 밤바다가 보였다. 밤바다, 바다.오노 사토시.사쿠라이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나 친했다는데, 왜 아무런 기억이 안나는걸까. 그날, 자신의 품에서 새근거리며 잠들어있던 오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느낀감정도 천천히 밀려들어왔다. 사쿠라이는 두 귀를 붉히고 한숨을 쉬었다. 오노 사토시. 중얼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멍하게 밖을 보던 사쿠라이는 이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정신을 차렸다. 휴대폰을 꺼내들어 화면을 확인한 사쿠라이는 잠시동안 그 화면을 멍하게 보다가 중얼거렸다.
“…돌파구.”
휴대폰을 쥔 사쿠라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휴대폰을 부서질 듯 쥐었던 사쿠라이는 이내답 메세지를 보냈다. 전송에 성공했다는 메세지를 확인한 사쿠라이는 휴대폰 홀드를 다시 잠구고는 밖을 바라보았다. 이게 맞는거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게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려 애썼다. 사쿠라이는 넓게 펼쳐진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하고, 조용한 것이 닮았었다. 당신과 닮은 그 밤바다에서 사쿠라이는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
오노는 한숨을 쉬며 대기실 앞에 섰다. 결국 피하고 피해도 결국은 마주해야 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동안 다행히 아라시 단체 예능 촬영은 없었고, 크게 회의도, 미팅도 없었다. 그일주일 동안 오노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만히 집안에 앉아 멍하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이 반드시 내려야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고 결정하기 위해 오노는 일주일을 보냈다. 사실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선택지는 마치 두개 같지만, 하나가 아닌가- 라는 의문. 이미 잊혀졌으니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정리가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잡고 싶다면? 사쿠라이 쇼에게 오노 사토시는 그저 리더, 같은 팀원, 동료가 아닌 연인이고 싶다고 자신이 욕심을 낸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오노는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밖을 바라보았다. 파아란 하늘에 작은구름들이 보였다. 이런 날이면, 너는 항상 나에게 전화해 밖에 나가 드라이브라도 하자며 불러내곤 했는데. 툴툴거렸던 바보같은 자신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붉어지는 눈시울을 벅벅 닦아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가만히 생각에 빠지고, 또 눈시울을 붉히는 그런 길고도 짧은 일주일이였다.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여전히 무서웠다. 앞서 말했던 질문의 해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무서웠다. 지금, 어쩌면 세상이 원하는 정상이 된 사쿠라이가 자신의 욕심으로 다시 비정상이 된다면. 그리고 그러는 중 저 아이가 힘들어하면, 자신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었다. 오노는 결국 담담한 마음으로 대기실 앞에 섰다. 그리고 참아지지 않는 한숨을 마지막으로 깊게 내쉬고는 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웃으려 노력했다. 달라진것은 없다고, 너를 그렇게 안심시키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마음이였으니까. 제일 나쁜 것을 알면서, 너를 위한 일이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입꼬리를 올리던 오노는 이내 들리는 큰소리에 그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미쳤어?!”
“그냥 자리만 나가는거야. 어머니가 워낙에 걱정하시니까. 알아서 잘 할테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마.”
어이가 없다는 듯 그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씩씩거리고 있는 니노미야와 쇼파에 앉아 살짝 굳은 얼굴로 말하고 있는 사쿠라이가 보였다. 그리고 사쿠라이가 한 말이 오노의 귀에 천천히 울렸다. 자리만, 어머니, 걱정. 차분하게 밀려오는 바다가 조금 일렁였다.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화를 내던 니노미야는 이내 오노를 발견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저 사람이 받을 상처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더이상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노는 가만히둘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쇼. 선 보는거야?”
오노는 입에서 가시를 뱉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입안이 썼다. 심장이 아려왔다. 밀려오는 파도가 느껴졌다. 오노는 최대한 모든 것을 누르고 또 눌러 또박또박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쿠라이는 그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여전히 나른한 얼굴로 말을 하는 오노에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정말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아렸다. 돌파구라고, 하나의 작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선택한 것이 왜 이렇게 아픈건지 모르겠었다. 단지 일탈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 사람에게 혼이 날까 무서워 그러는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알아서 잘 할거 아는데, 조심은 해야해. 알지?”
“……네.”
“좋…은 사람이면, 우리도 소개시켜줘.”
저렇게 웃는 오노 사토시를, 자신이-. 사쿠라이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였다. 최근 피곤해서, 외로워서 생각이 엄한 곳으로 튀고 있다고. 그러니 더이상 생각을 안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사쿠라이는 빙긋 웃는 오노에게 걱정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보였다. 오노는 그래,라고 작게 대답했다. 그리곤 화장실 다녀와야겠다, 짧게 말하곤 밖으로 향했다. 오노가 대기실 밖으로 나가자 한마디도 안하고 있던 니노미야가 결국 답답해 죽겠다는 듯, 그리고 진심으로 속상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쩌려고 그래. 얼마나 후회할려고.”
“…무슨 소리야?”
“헛똑똑이. 중요한게 뭔지도 모르고.”
니노미야는 그 말을 끝으로 대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뒤늦게 온 마츠모토와 아이바에게도 선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꺼냈지만, 둘의 반응도 니노미야와 다를 것이 없었다. 마츠모토는 한숨을 쉬며 대기실에서 나갔고, 아이바는 꽤나 진지한 얼굴로 리더도 아냐고 묻고는 한숨을 쉴 뿐이였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었다. 심란해도 자신이 심란하고, 결정을 해도 자신이 결정할 일이 분명한데 주변이 어수선했다.
그리고 가장 어수선한 것은, 촬영 직전 다시 대기실에 온 오노의 붉게 부어오른 눈밑을 본 후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이였다. 이 감정의 이름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그리워 미칠 것 같은지, 알 수 없었다.
←
여, 리더.
오노는 자신의 어깨를 툭하고 두드리는 느낌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여기 술집은 꽤나 외진 곳에 있어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외진 곳을 찾아다니는 연예인들까지도 잘 모르는 그런 술집이였다. 그러니 이 가게는 오노에게는 최고의 장소였다. 자주 찾는 집은 만들지 않는 오노도 이 집만은 단골이라 자신 할 수 있었다. 근데 여기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만난다는게, 무언가 자신의 비밀장소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오노는 살짝 알딸딸한 정신을 부여잡고 자신을 부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다정한 손길, 예쁜 웃음. 아,
“마츠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마스터 똑같은거로 한잔 주세요.”
“준도 여기 아는구나아….”
“내가 여기 알려줬잖아.”
마츠모토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자 오노는 푸흥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런 오노에 마츠모토는 안쓰럽다는 듯 오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따듯한 정종이 나오고,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술을 마시던 중, 오노가 휘청거리는 것을 본 마츠모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속상해서 그래. 내가.”
“웅? 모가아?”
“형 이렇게 힘든거.”
마츠모토의 한없이 다정한 한마디에 오노는 잠시 굳었다가 마츠모토의 볼을 잡았다. 마츠모토는 놀라 어이, 라고 말했지만 굳이 오노의 손을 떨쳐내지는 않았다. 오노는 말랑한 마츠모토의 볼을 주물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준보다 형이자나.”
“응.”
“그럼 임마, 형이 괜찬타 하면 갠찬은거야. 알게써?”
오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웃는 그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게 보였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마츠모토의 눈에는 항상 보였다. 마츠모토는 살짝 얼얼한 볼을 만지며 오노를 바라보았다. 왜, 이사람은 대체 왜. 자신이 가장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걸까. 당신의 빛은 우리들이 따라갈 수 도 없을 정도의 것이란 걸, 왜 당신만 모르는걸까. 마츠모토는 오노의 빈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아주 작고 낮게, 오노에게만 들리게 목소리를 냈다.
“나는 형보다 동생이니까, 마음 놓고 기대도 돼.”
“…웅?”
“누가봐도 안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 것도 나쁜거야. 거짓말이라고.”
“…거짓말 아닌데에.”
“형은 뭐가 그렇게 매일 괜찮아. 매일 괜찮은거, 아니여도 돼. 알잖아.”
마츠모토의 말에 오노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이 빙글거리며 돌았다. 내일 방송국에 잠시 가야하는데 이렇게 마셔서 큰일이야, 라는 생각이 왜인지 문뜩 들었다. 자신은 오노 사토시였다. 아라시의 리더. 흔들려서는 안되는, 이기적이여서는 안되는, ……그럼에도 그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오노는 마츠모토를 바라보지 못하고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나는 괜찮아야지.”
“…….”
“………괜찮을, 거야.”
자신만 참으면 모든 것이 다. 아라시도, 연예계 생활도, 인생도 그리고, 사쿠라이 쇼도. 다 괜찮을 것이였다. 자신의 욕심으로 무언가를 잃기에 오노는 너무 여렸고, 약했고, 지쳤었다. 취해 멀어지는 정신 속 귀에서 똑똑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를 오노는 따랐다. 그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에 오노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눈을 스르륵 감았다.
→
징그러워,
그 목소리는 분명, 사쿠라이 쇼의 목소리였다.
←
오노는 조금 지친 기색을 달고 대기실로 향했다. 짧은 잡지 인터뷰가 있을 예정이였다. 사진 촬영이 나중으로 밀려 다행이였지 오노는 퉁퉁 부운 눈을 매만졌다. 어제 많이 마시긴했지만그정도로 취할지는 몰랐다. 다행히 마츠모토가 데려다 주어 눈을 뜬 것은 침대였지만 마츠모토를 만나지 않고 거기서 잠들었다면 어찌할 뻔 했는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노는 한숨을 쉬며 모자를 꾹 눌러 썼다. 망가진 모습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는 계속 되어지는 일상의 연장선인 오늘이, 이질적이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오노가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가 대기실로 들어갔고, 대기실에는 이미 네명 모두 와있었다. 게임을 하는 니노미야도, 환하게 웃으면서 케이크를 먹고 있는 아이바도,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는 마츠모토도 모두다 평소와 같았다. 신문을 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사쿠라이도, 이젠 적응해야할 평소와 같았다.
“세이프네.”
“아슬아슬했지?”
오노의 등장에 다른 멤버들이 오노를 반겼다. 사쿠라이는 크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신문에서 오노로 시선을 옮겼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왜인지 오노의 부은 눈이 힐끗 거리며 보였다. 너무 잘, 보였다. 사쿠라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신문을 보려 애썼다. 왜이렇게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리는지 모르겠었다. 이 감정은, 속상함인가. 왜, 내가 속상하지. 다 큰 어른이 과음을 한 것에 왜…이렇게 속상한거지. 사쿠라이는 한숨을 쉬며 신문에 집중하려 애썼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엄청 부었네. 속은 괜찮아?”
“응. 미안. 어제 나 때문에 곤란하지는 않았어?”
“응.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마츠모토와 오노는 마주 앉아 꽤나 다정한 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평소와 다름 없는 분위기였다. 오노의 걱정을 많이 하는 마츠모토의 당연하고도 의례적인 일이였다. 마츠모토가 손을 뻗어 오노의 부운 눈을 만지려했다. 으이구, 하는 다정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며 마츠모토의 손이 오노의 눈과 가까워졌을 때, 사쿠라이는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날려 마츠모토의 손목을 잡았다. 탁, 하는 소리가 대기실에 울렸다. 예상 밖의 소리에 니노미야와 아이바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듯 한 오노와 마츠모토, 그리고 마츠모토의 손목을 잡고 가장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사쿠라이가 보였다.
“…쇼?”
“…아, 아 미안. 하하, 하,”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마츠모토였고, 마츠모토가 사쿠라이를 부르자 사쿠라이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잡은 마츠모토의 손목을 놓고 사쿠라이가 어색한 듯 웃어보였다. 꽤나 세게 잡혔어서 인지 마츠모토의 하얀 팔목이 붉게 올라왔다. 그 누구도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 분위기를 살리려고 항상 노력하는 니노미야 조차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셋을 바라보았다. 정적을 깬 것은 사쿠라이의 전화벨소리였다. 대기실을 가득 채운 사쿠라이의 전화벨 소리에 사쿠라이는 잠시, 하며 전화를 급하게 받았다. 넘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사쿠라이는 네, 라고 대강 대답하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대기실로 흘러들어왔다.
“알아요. 오늘. 안늦을게요.”
사쿠라이가 목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지고, 마츠모토는 허, 하고 웃으며 자신의 붉어진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괜찮아?”
“이게 무의식인가봐.”
오노의 걱정어린 목소리에 마츠모토가 피식 웃으며 오노를 바라보았다. 오노의 두 귀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봐봐. 저런 무의식 조차 좋으면서, 왜 아닌 척을 해. 마츠모토가 입꼬리를 올렸다. 니노미야도, 아이바도 마찬가지였다. 마츠모토의 손목을 바라보는 오노에 아이바는 오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잘됐다, 오쨩. 그 넘어오는 목소리가 퍽 다정했다. 오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너의 다정함에 언제나 지는 것은 자신이라서. 너의 무의식에서 나온 그 다정함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이 힘들어서. 그렇다면 아무 것도 모르면 좋을텐데, 네가 대기실에 남기고 간 그 전화 내용이 뭔지는, 더럽게도 잘 알 것 같아서. 그게 싫었다.
“오늘인가보네.”
“그러게. 생각보다 빠른데. 결국 하는구나.”
니노미야의 말에 마츠모토가 한숨을 쉬었다. 니노미야는 게임을 멈추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잔뜩 웃음끼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쿠라이 쇼가 평생을 후회하고 괴로워 할 흑역사를 스스로 갱신하는 날이 오는구나.”
그 목소리에는 장난끼만 있는 것이 아니였다. 왜인지 이젠 안심이라는 듯, 이제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니노미야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안심어린 걱정이였다.
→
“그래서, ……사쿠라이씨?”
사쿠라이는 자신을 부르는 여린 목소리에 황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방송용으로 자주 짓는 웃는 얼굴로 네, 라고 부드럽게 답했다. 왜, 여기에 자신이 앉아있더라 라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기실로 돌아오고,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잡지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오노에게 눈이 갔다. 왜 저사람이 애써 웃고 있는 것 같은지 모르겠었다. 평소와 같은 당신이 어색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는건 평소와 다른건 자신인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인터뷰를 마친지 모르겠지만,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쿠라이는 바로 일어났다. 오늘 뒤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다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사쿠라이는 도망치 듯 대기실에서 벗어났다. 오노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상관, 없었어야 했다. 그리고 도망치 듯 빠져가고 있는 방송국의 복도에서 아이바를 마주쳤다. 먼저갈께, 그렇게 말하고 지나치려는 자신을 아이바가 잡았다. 그리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낯선, 굳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래.
아이바는 딱 그 한마디를 하곤 사쿠라이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생했어, 라고 말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아이바를 사쿠라이는 잡을 수 없었다. 잡아서 그게 무슨 말인지, 너는 그렇게 굳은 얼굴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듣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말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듣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듣고 싶었다. 밀려오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겠는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알아 해결하고 싶었다.
그저 그것이 욕심이라는 걸, 사쿠라이가 모를리 없었지만.
결국 만난 여성은 참 아름다웠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것이 한눈에 보이는 여자였다. 우아했고, 기품있고, 아름다웠고, 차분했고, 지적이였다. 자신이 싫어할 수 없는, 아니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여자인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근데 왜 이렇게 지루한지 모르겠었다. 이게 아니라 머리가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껍데기만 남아 웃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아깝다, 그런 생각이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들었다.
“그럼 사쿠라이씨는 어떠세요?”
“…네? 아, 죄송합니다. 뭐가…?”
“제가 말이 빨랐나봐요. 죄송해요. 연예계요. 제 친구는 워낙 힘들다고 그래서.”
대화를 곰곰이 씹어보았다. 그녀의 친구 중에는 뉴스앵커가 있었고, 일이 꽤나 힘들다고 자주 말한다고 했었다. 사쿠라이는 겨우 따라간 대화에 싱긋 예의상 웃어주고 입을 열었다. 힘들죠, 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더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가, 힘들어? 라는 물음이 자신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연예계에 있었던 오랜 시간 동안 힘든일이 참 많았다. 근데 왜 나쁜 추억이 아닌건지 모르겠었다. 더러운 꼴도, 억울한 일도, 화나는 일도 많았지만 항상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이유의 끝에 항상 누군가가 있었었다. 이 사람과 함께니까 나는 괜찮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 였더라.
“……감정을 숨겨야하는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아, 역시 그렇죠?”
“………항상 괜찮기를 바라니까요.”
늘 괜찮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뒤에서 당신은 안괜찮으니 제발 기대라고 몇번이고 말했던 자신.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숨기느라 바빴었던,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자기 자신.
사쿠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쿠라이씨? 라는 물음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 속이 어지럽게 웅웅 거렸다. 뭔데? 이 감정은 대체 뭐야? 사쿠라이는 이마를 한손으로 짚었다. 자신이 항상 괜찮을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이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의, 모든 이유. 사쿠라이는 죄, 죄송, 이라고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자신의 몸은, 머리는, 기억은 한사람만을 부르고 있었다.
오노, 사토시. 사토시.
눈물이 나왔다. 비집고 올라오는 눈물을 차마 닦아낼 수 없었다. 빌어먹게 아파오는 마음이, 너무 뜨거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북받쳐 올라오는 이상한 추억들이 사쿠라이를 멈추지 않게 했다. 행복하지 않아 보여요, 매니저가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행복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당신의 상처받은 그 얼굴을 본 뒤 부터 이상하리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는건, 그렇다는건 어쩌면 나의 행복의 이유 조차, 당신이여서였을까.
“……쇼?”
나의 세상에 가장 밝게 빛나는 이유가, 왜인지 모르게 떠나버린 이유가, 당신이라서일까.
사쿠라이는 헉헉거리며 도착한 오노의 집에서 마주한 오노를 와락 끌어안았다. 땀범벅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끌어안는 사쿠라이에 오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쇼, 쨩? 이라 짧게 신음처럼 사쿠라이의 이름을 불렀다. 사쿠라이는 오노의 머리를 꾹 눌러 자신의 폼에 더욱 깊게 집어넣었다. 사는 것 같았다. 막혔던 숨이 탁 하고 트이는 듯 했다.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이, 끊임없이 폭발하여도 내뱉지 못했던 모든 감정들이 가라앉았다. 오노 사토시. 마치 사쿠라이 자신의 안전핀 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당신으로 인해 괜찮아졌다.
“…무슨 일, 있,”
“모르겠어요.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런데 뭐가 잘못된지 모르겠어요. 이상해요. 너무 이상해요.”
“…쇼?”
“계속 보고 싶어요. 바다를 보면 당신 생각 밖에 안나요. 촬영을 해도, 대기실에 있어도, 가만히 길을 걸어도 당신 생각 밖에 안나요. 동경이 아니에요. 단순한 그런게 아니에요. 그래서 미치겠어요. 이상해요. 왜 이렇게 속상한지, 왜 이렇게 ……비참해질 정도로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사쿠라이의 목소리 끝이 찢어지 듯 갈라졌다.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던 사쿠라이는 결국 그것마저 포기했다. 이 감정 마저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 피하지마요. 나 버리지마요. 저 징그러워하지마요.”
“…무슨 소리야 그게.”
“……저 포기하지 말아요.”
“…….”
“…사랑하나봐요. 제가.”
사쿠라이가 마지막으로 토해낸 그 한마디가 오노의 귀에 박혔다. 사랑한다고.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의 사랑이 그렇게 말했다. 징그럽다는 듯 표정을 지은 네가 나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징그럽다는 말이, 자신을 징그러워할까 먼저 꺼낸 방패같은 말이였다 토해내는 이 여리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작은 연인. 자신의 영원한 사랑.
오노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지금까지 누르고 누르던 마음 속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넘실거렸다. 쏟아지는 파도에, 미동도 없었던 그 바다에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고 그 파도는 자신의 온 몸에 부딪혀 부서졌다. 태풍이였다. 아라시였다. 그 자체가, 사쿠라이 쇼 너였다. 내 모든 이유 또한 너였다.
“…미안해. 미안해 쇼.”
“…….”
“내가, 욕심을 내서 미안해. 네가 행복하길 바랬어. 그래서,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어.”
“…형?”
“……내 행복이 너라서, 포기할 수 없는 욕심이라서, 미안해 쇼.”
오노는 사쿠라이의 어깨를 꼭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추잡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욕심에, 욕망에 결국 오노는 주저앉았다. 상처받을 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사쿠라이는 결국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바보같은 착각과 동시에 자신을 하염없이 치켜세웠다.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바보같이 착각하고 또 착각했다. 전혀 아닌데. 방파제를 넘지 못해 결국 부서지고 마는 그 파도 처럼, 자신도 그것처럼 부서져 망가지는데. 자신이 뭐라고. 감히, 감히. 무너지는 오노를 사쿠라이가 꼭 끌어안았다. 사쿠라이의 손길이 다정했다. 그리웠다. 너무너도 그리웠다. 서로는 서로가 그리웠다.
“사랑해.”
“…….”
“사랑해. 쇼. 널, 널 감히 내가 사랑해.”
“…….”
“그러니까, 잊어버리지마. 네 기억 속에 내가 살게, 허락해줘. 제발.”
오노는 자신의 감정을 토해냈다. 꼭꼭 숨겨두었던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그렇게 토해낸 감정은, 서로 같은 소리를 내었다. 부서지는 파도의 신음소리가 아닌, 서로를 향해 다정하기 짝이 없는 온도로,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로. 그렇게 부서져 서로를 덮쳤다.
←
“아라시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건데요! 이거 아세요? 요즘 핫한건데!”
“어, 이거 그거잖아요. 소원박스.”
“역시 니노미야씨! 알고 계시군요!”
잡지 인터뷰가 끝날 무렵 리포터는 박스를 꺼내들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핫한 소원박스였다. 정말 이루어진다며 꽤나 인기를 사고 있었다. 리포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박스를 중간에 두었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소원을 적어서 넣는거랑 좀 다르죠? 그래서 더 독특하고 신기한 것 같아요! 아라시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저희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리포터는 대강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다들 신기해하며 진지한 자세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오노도 사쿠라이도 서로 눈을 감고 두 손을 꼬옥 모았다. 하나 둘 셋, 하면 비는거예요? 리포터의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쿠라이와 오노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동시에 소원을 빌었다.
사쿠라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오노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몰랐겠지. 서로의 행복이 서로라는 것을.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의 기억 속 자신이 있다는게, 그 기억이 아픈 기억이 아닌 다정하고도 분홍 빛을 내는게,추억하며 웃을 수 있다는게 행복이라는 것을. 그 행복의 끝에 함께 서있는 것이 둘임을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는게.
→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